미술을 사랑한 기업가들(5) 트레티야코프

미술을 사랑한 기업가들(5) 트레티야코프

미술을 사랑한 기업가들(5) 트레티야코프

 

러시아 미술을 세계적 보물로 만들어

                                             

여미옥 홍선생미술 대표

 

[미술을 사랑한 기업가들] 트레티야코프

 

 러시아 트레티야코프 미술관 내부 모습. 알렉산드르 이바노프가 그린 ‘민중 앞에 나타난 예수’ 앞에 관객이 몰렸다. 러시아 모스크바의 붉은광장을 한 바퀴 산책하면서 이곳에 왔다는 사실이 꿈만 같았다. 러시아는 필자가 이십대 시절에 읽고 지금까지 고이 간직한 ‘죄와 벌’ ‘부활’ ‘닥터지바고’ ‘안나 카레니나’의 나라이기 때문이다. 1991년 12월 구소련이 붕괴하고, 지난해부터 한·러 무비자 협정이 시작되어 러시아가 더 가깝게 느껴졌다. 이곳에 온 목적은 기부로 만들어져 러시아 미술작품만 전시되는 트레티야코프 국립미술관을 보기 위해서다.

 

트레티야코프 미술관에 발을 내딛자 미국·유럽의 다른 미술관을 방문할 때와는 달리 글로 표현할 수 없는 애잔함이 밀려왔다. 러시아 역사와 생활상, 사람들의 마음이 그림 속에 고스란히 담겼기 때문이다. 러시아 미술가들의 작품만 집중적으로 수집한 트레티야코프는 과연 어떤 사람일까? 그가 단순히 미술에 대한 사랑만으로 수많은 돈을 미술관에 투자하지는 않았을 터이다. 섬유사업을 하던 조부(祖父)의 뒤를 이은 그는 판단력이 뛰어난 사업가였다. 모스크바에서 무역업을 하던 트레티야코프는 24세 때 동시대 러시아 화가들의 수많은 작품을 수집하여 국립미술관을 세우기로 결심하고 설립 자금을 지원했다.

 

1892년 그는 자신이 수집한 2000여 개의 그림과 조각 작품, 그리고 모스크바 시장이던 남동생의 수집품까지 모스크바 시에 기부했다. 그는 딸에게 보내는 편지에 ‘살면서 사회에서 받은 것들은 유용한 형태로 바꾸어 다시 사회에 환원해야 한다고 나는 늘 생각했다’는 글을 남겼다. 그는 정규 교육을 받지 않았지만, 혼자 공부하여 문학, 미술, 영화, 음악 등 다방면에 박식한 사람이었다. 여행을 좋아하고 가족 간의 조화, 신뢰, 보살핌, 존경, 기쁨을 중요한 가치로 여기며, 자녀를 가정에서 전통적 방식으로 교육했다. 그래서 미술가, 작가, 음악가들이 그의 집을 자주 찾았다.

 

19세기 후반 러시아 미술의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 이동파 화가의 등장은 트레티야코프가 이루고자 했던 문학, 과학, 음악계 인물의 초상화를 주문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이동파 화가들은 트레티야코프의 지원을 받아 문학을 소재로 한 그림, 풍경, 농노의 애환, 역사화 등을 그리며 재능을 꽃피웠다. 트레티야코프는 흥정 없이 작품을 구매했기 때문에 화가들이 오히려 그에게 가격 할인을 제시하기도 했다.

 

러시아에서는 표트르 대제(재위 1682~1725)가 젊은 시절 여행을 통해 서유럽의 건축과 미술에 관심을 가지면서 훌륭한 화가가 많이 배출되기 시작했다. 그 이전에는 미술사적으로 이콘화(그리스도교 신앙을 담은 그림)가 대부분이었지만, 표트르 대제가 궁정화가 이반 니키틴(1680~1742)을 이탈리아로 4년간 유학 보내며 엄청난 미술 발전을 이루어냈다. 또한 예카테리나 2세(재위 1762~1796)도 개혁을 통해 초상화 등 미술의 황금시대를 이루며, 근대미술 교육제도를 정착시켰다. 이후 교육을 통해 많은 전문 화가가 배출되고, 여기에 미술과 조국을 사랑한 트레티야코프의 지원이 이어지며 러시아 미술은 세계적 보물로 자리 잡게 되었다.

 

 

● 문의: 1588-0088 www.eduhong.com(홍선생미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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