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을 사랑한 기업가들(1) 페기 구겐하임

미술을 사랑한 기업가들(1) 페기 구겐하임

미술을 사랑한 기업가들(1) 페기 구겐하임

평생 수집한 작품들로 미술관을 채우다

여미옥 홍선생미술 대표

1.구겐하임

알렉산더 칼더(1898~1976)가 만든 침대에서 잠을 자는 유일한 여자, 페기 구겐하임. 그의 예술혼이 없었다면 현대미술은 어떻게 됐을까?

구겐하임 재단이 운영하는 미술관은 세계 곳곳에 있는데 특히 뉴욕과 빌바오의 구겐하임 미술관이 유명하다. 베네치아 구겐하임 미술관은 타 지역에 비해 규모가 작지만 특별한 매력이 있다. 바로 구겐하임 재단의 설립자인 솔로몬 R. 구겐하임(1861~1949)의 조카인 페기 구겐하임(1898~1979·사진)이 평생에 걸쳐 직접 수집한 작품들로 미술관이 채워져 있기 때문이다. 뉴욕 현대미술관의 초대 관장이었던 알프레드 바는 페기 구게하임을 ‘단순히 자신의 즐거움을 위해 예술 작품을 모으는 수집가나 예술가를 돕고 공공 미술관을 설립하는 자선가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예술과 예술가 모두에 대해 책임을 느끼고 적절한 수단을 쓸 줄 알았던 행동가였다’고 평했다.

 

자타공인 현대미술 중독자 페기 구겐하임의 예술 원동력은 어디서부터 시작되었을까? 뉴욕에서 태어난 페기 구겐하임은 어린 시절 가정교사로부터 유럽의 역사를 배우고 유럽 미술관 탐방을 경험했다. 아버지의 영향으로 일찍 예술을 접할 수 있었고 이것이 예술적 관심에 대한 밑거름이 되었다. 그런데 불행히도 그녀의 아버지는 타이타닉 침몰 사고로 세상을 떠났고 불안한 사춘기를 보냈다. 20대 초반에 거액의 상속을 받은 그녀는 파리로 갔다. 그녀의 남편 로렌스는 작가와 화가를 많이 알고 있어 페기는 자연스럽게 예술가들과 교류하게 되었다. 또한 그녀는 초현실주의 화가 마르셀 뒤샹을 만나 현대미술을 기초부터 탄탄하게 배울 수 있었다.

그녀는 다양한 사람들과의 만남에서 예술에 대한 지식과 감상하는 안목을 키워나갔다. 1938년 런던에 문을 연 구겐하임 죈느 갤러리는 시작부터 성공적이었다. 영국 최초의 칸딘스키 개인전과 초현실주의 화가 이브 탕기의 전시회도 열었다. 또한 전쟁 중에 유럽에서 수집한 작품을 이삿짐으로 꾸려 미국으로 공수했고 1942년에 뉴욕 금세기 미술 화랑을 개관했다. 이때 잭슨 폴록(1912~1956)을 발굴해 안정된 상태에서 작업할 수 있도록 지원했으며 그는 단번에 스타가 됐다. 한 번은 폴록에게 벽화로 사용할 가로 6미터 세로 2.4미터짜리 캔버스를 부탁했는데 그는 두어 시간 만에 액션페인팅이란 걸작을 만들었다.

페기는 1947년 미술 화랑을 접고, 베니스로 가 30년을 살았고 71세에 그녀의 사촌 해리 구겐하임 덕분에 미국 본가와 소원했던 관계를 회복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녀가 소장한 컬렉션 전부를 솔로몬 R. 구겐하임 재단에서 원활히 유지할 수 있도록 동의하는 서한을 보냈다. 그녀가 세상을 떠나고 나서 그의 저택은 ‘페기 구겐하임 미술관 The Peggy Guggenheim Museum’이라는 공식명칭을 얻어 운영되고 있다.

20세기 현대 미술사의 한 획을 그은 컬렉터. 전쟁 중에 하루에 한 점씩 작품을 샀던 광기에 가까운 미술사랑. 이제 그녀는 갔지만, 그녀가 발굴한 화가들의 그림은 베네치아 구겐하임 미술관에 전시되어 예술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발길을 부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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