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을 사랑한 기업가들(7) 로스차일드家

미술을 사랑한 기업가들(7) 로스차일드家

미술을 사랑한 기업가들(7) 로스차일드家

 

 

에드몽, 루브르 박물관에 소장품 전부 기증

여미옥 홍선생미술 대표

7로스차일드가

프랑스 루브르박물관 모습. 에드몽 로스차일드는 평생 수집한 미술품 4만여 점을 이곳에 기증했다./홍선생미술 제공

프랑스 루브르 박물관 그래픽 미술 전시부에는에드몽 로스차일드 홀이 있다. 에드몽 드 로스차일드(1845~1934)는 유대인이 팔레스타인 지역으로 이주할 수 있도록 이스라엘 땅 구입과 건국 자금을 내어놓았던 인물이다. 이스라엘 초대 총리였던 벤 구리온은 그에 대해유대인이 유랑민으로 지낸 2000년의 세월 동안 에드몽 드 로스차일드에 버금가는 또는 견줄만한 인물을 발견하는 일은 도저히 불가능하다고 평하기도 했다. 또한 에드몽 로스차일드는 프랑스 루브르 박물관에 자신의 소장품을 전부 기증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에드몽 드 로스차일드의 조부(祖父)인 마이어 암셀 로스차일드(1744~1812)는 독일 프랑크푸르트 게토에서 태어났다게토는 당시 유대인이 격리돼 살던 지역으로, 150명이 살도록 설계된 곳에서 3000여 명이 함께 거주한 감옥 같은 곳이었다. 마이어 암셀은 어려서부터 명석해 열악한 환경에서도 유대교 신학교에 다니며 랍비가 되기 위한 탈무드 교육을 받았다. 그러나 부모가 천연두로 사망하면서 생활이 어려워지자, 친척의 도움을 받아 은행에서 일하게 됐다.

 그는 7년 동안 금융업에 종사한 후 고향으로 돌아와 골동품 사업을 시작했다. 옛날 동전을 헐값에 사서 비싸게 파는 일이었다. 그는 동전을 팔기 위해 귀족의 집을 찾아갔지만 허름한 옷을 입은 그를 장사꾼으로 업신여기는 하인들에 의해 쫓겨나기 일쑤였다. 그러다가 우연히 인두세 독촉장을 보고, 새로운 마케팅 방법을 생각해냈다. 수집한 골동품 목록을 프랑크푸르트에 사는 유명한 귀족과 거상에게 우편으로 보내는 것이었다. 최초로 우편을 이용한 통신판매를 마케팅에 적용한 덕분에 그의 사업은 날로 번창했다. 그는 동전 수집가인 빌헬름 왕자의 신용을 얻어 어용상인(御用商人)’으로 지정됐다. 이후 전쟁 중에 빌헬름 9세의 재산을 지키며 신뢰를 얻은 그는 유럽 각국에서 돈을 수금할 수 있는 권한을 받았으며, 이를 계기로 세계적 금융가로 발돋움했다.

 마이어 암셀은 정보와 인맥을 매우 중요시하는 유대인답게 다섯 아들을 독일 프랑크푸르트, 오스트리아 빈, 영국 런던, 이탈리아 나폴리, 프랑스 파리로 보내 서로 정보를 교환하는 네트워크를 구축했다. 형제의 결속력으로 로스차일드가는 전쟁 중 금 시장을 장악했다. 또한 워털루 전투의 가짜 정보를 흘려 영국 채권의 62%를 소유했고, 막대한 자금력으로 산업혁명 때 더 큰 부를 쌓았다금융계의 명문가가 된 로스차일드 가문은 대를 이어 내려가며 유럽에서 손꼽히는 미술품 구매자가 되었다. 로스차일드 가문 사람들이 모은 다양하고 귀한 예술품은 여러 미술관에 기증됐다. 그 중 에드몽 로스차일드는 고대 판화를 주로 모았으며 훗날 4만여 점의 미술품을 루브르 박물관에 기증했다. 발 빠른 정보로 막대한 부를 이룬 로스차일드 가문의 이야기는 누구나 한 번쯤 들어봤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그들에게 진정 배워야 할 점 중 하나는 자신들이 수집한 예술품을 미술관에 기증해 대중이 누릴 수 있게 한 정신이다.

 

문의: 홍선생미술 1588-0088 www.eduho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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